성균관대학교 웹진

인물포커스 | 성대사람들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 많은 문과 학생들에게 익숙한 말이다. 문과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으로 인해 취업의 벽 앞에서 좌절하기도 한다. ‘문과생존원정대’의 고재형 작가는 이 현실에 담담한 위로를 전한다. 고재형 작가는 많은 문과 학생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공은 그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재형 작가의 ‘문과생존원정대’는 SNS에 3년 동안 약 60여 편의 문과생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10만 명의 구독자와 10만 개의 공감이라는 엄청난 호응을 얻어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다. 이번 인물포커스에서는 최근 ‘문과생존원정대’ 단행본을 출간한 고재형 작가를 만났다.



‘문과생존원정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말로 우연이었어요. 친구들과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왔는데, 그 영화에서는 문과생들이 지구의 위기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고요.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술 한잔하러 갔는데, 친구 한 녀석이 ‘야, 우리 문과는 정말 생존 원정이라도 떠나야 하냐’고 읊조리던 것을 듣고, 그게 너무 웃겨서 페이스북으로 페이지를 만들었죠. 그게 ‘문과생존원정대’의 탄생이었어요. 잠들기 전에, 문과생의 웃픈 현실을 자조하는 게시글을 하나 올리고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까 좋아요가 1만 개가 넘어있더라고요. 그게 계기가 되어 글과 그림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호응이 좋아 네이버 등의 연재처를 거쳐 출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중국어를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중국어의 매력에 빠져 전공도 중어중문학과로 선택했어요. 그때는 어른들이 하셨던 ‘중문과 가면 취업 잘된다’는 말과 중국어에 대한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전공을 선택했었어요. 하지만 제대로 된 전공 탐색 없이 진로를 선택한 결과를 톡톡히 맛봐야 했습니다. 앉아서 진득하게 공부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제게, 암기와 탐구가 기본이 되는 중국 문학과 역사 과목이 잘 맞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공부 편식이 심해져 학교생활에는 흥미를 잃기 일쑤였고, 이런저런 개인 사정으로 인해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면서 학교생활은 더욱 요원해졌죠.

그렇다고 제가 전공과목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제 직업과 전공을 분리해서 바라보기 시작하니까, 전공과목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논어>를 비롯한 사서삼경을 왜 읽어야 하는지 몰랐던 신입생 시절과 달리, 취미와 교양처럼 읽었던 <논어>는 제게 큰 울림을 주기도 했어요. 변명하자면, 중간-기말고사는 잘 보지 못했겠지만 <논어> 감상문을 쓰라고 한다면 누구보다 잘 쓸 자신이 있어요. 그만큼 3,4학년 때에는 사서삼경과 한시, 그리고 고전 문학과 현대 문학까지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나요. 특히,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 중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라는 말을 가장 좋아해요. ‘공부만 하고 생각은 하지 않으면 사리에 어둡고, 생각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는 말인데, 창업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기 쉬웠던 제 중심을 잡아줬던 소중한 글귀이기도 합니다.




제가 문과생을 대표하는 자리도 아니고, 또 저보다 훨씬 더 이 문제에 오랜 고민과 연구를 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아서 조심스럽지만, 제가 생각하는 ‘인문학’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개인의 향기를 만들어주는 공부’라고 할 수 있어요. 누군가 ‘인문학’이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면 저는 그건 일종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인문학’ 그 자체는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오히려 취업하기 위해서는 직무에 대한 이해와 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해요.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계속 ‘버틸’ 수 있을지, 어떤 것을 성취했을 때 행복한 사람인지 등에 대한 것을 알아야만 좋은 직업을 고를 수 있거든요. 인문학은 그런 아주 기본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도구’이자, 각각의 개성을 만들어주는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요.

다만 ‘인문학’과 ‘학교 공부’를 분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취업이 잘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학점 좋고 스펙이 좋은데도 취업이 안 되는 우리 주변의 친구들을 설명할 길이 없어지니까요. 학교 공부를 기본적인 소양 정도로 여기는 것은 좋지만, 중간-기말고사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더 많은 활동을 하면서 전공을 더 폭넓게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굳이 인문학으로 직업을 못 구해도, 우리는 인문학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거든요. 인문학으로 직업을 구해야 한다는 틀에서 벗어나는 것, 내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지 못하면 낙오자라는 틀을 벗겨내는 것이 ‘문과생존원정대’가 추구하는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처음에 저의 주된 취재원들은 주변 친구들이었어요. 제 주변에는 다 천상 문과생들밖에 없거든요. 그들의 삶을 관찰하기도 하고, 먼저 다가가 술 한잔하자고 하면서 내면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아마 200번의 인터뷰 동안 소주를 몇 박스는 마셨을 것 같아요. 제 또래의 이야기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보려 했던 것이 주된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하지 못한 세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전하고, 해결하려고 드는 것만큼 조심스러운 것도 없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대학 생활이 없었다면 ‘문생원’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문생원’ 중에서 ‘국문과 IT 회사에서 살아남기’와 ‘문예창작과 출판사에서 살아남기’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우리는 흔히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거야’라는 말을 믿으며 살아가는데, 이 두 분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거든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해도 힘들고 어려울 수 있고, 그것을 ‘진로’와 ‘직업’으로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죠. ‘무조건 열심히 하면 잘 될 거야’,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나’라는 대책 없는 힐링 조언으로부터 자유롭게, 한 번 더 진로와 적성을 고민해볼 수 있는 편이라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책을 출판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서점 평대 ‘화제의 책’에 ‘문과생존원정대’가 놓여 있던 순간, 그리고 처음 책을 만졌던 순간, 그리고 온라인 서점에서 제 이름이 검색되는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뭐랄까, 세상에 제가 작은 돌멩이 하나 던지고 기록을 남긴 기분이랄까요. 기회가 된다면 돌멩이를 더 자주 던지고 싶어요.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웃음) 퇴근하고 새벽까지 글 쓰고, 교정하고, 그리고 그림 그려주는 정채리 작가와 밤새 콘티 작업하고 주말마다 만나서 교정작업 했던 순간이 즐거웠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거든요. 이 자리를 빌려 매일 늦게까지 밤새주신 출판사 편집자님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문생원’으로 이중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저는 지금 이 동거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한쪽으로는 직장에서 겪는 사람들의 진로문제를 마주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학교 현장에서 마주치는 전공과 진로문제를 볼 수 있거든요. 단기적인 목표가 있다면, 이 불편한 동거를 불편하지 않게 잘 지휘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둘 다 조금씩 더 발전해 나가는 게 꿈입니다. 장기적인 목표라면, 단순히 만화에 그치지 않고 영상, 글, 사진 등 더 다양한 포맷으로 발전시키면서 ‘꾸준히’ 해나가는 게 목표예요. 언젠가 우리나라에 ‘문과’와 ‘진로’ 고민이 없어진다면 행복하게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문과생존원정대’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귀예요. 저처럼 학교생활보다는 바깥 생활에, 공부보다는 다른 활동에 관심이 더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걸 알아요. 학교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더 좋은 친구들과 스승을 만나는 곳이지 무조건 묶여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틈은 학교에 없을지도 모르거든요. 학점도 그다지 좋지 않고,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여전히 전공과 문학을 사랑하며,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는 선배들이 많다는 것이 위안이 되었으면 해요.

그럼 오늘도, 모두 생존하시길 바랍니다.



‘문과생존원정대’는 생존에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정답이 없다니! 독자들은 뭐가 맞는지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문과생존원정대’에 따르면 ‘정답이 없는 것’ 또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문생원’이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 받는 이유는 아마 이것이 아닐까. 내가 하는 고민들이 오로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때로는 그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문과생존원정대’와 고재형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주희선 기자
한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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