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외국인의 성대생활 | 성대사람들

이번 외국인의 성대생활에서는 우리 학교 유전공학과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아카시 아후자 학우를 만나봤다. 선한 미소가 인상적인 아카시. 미소만큼이나 젠틀했던 그와의 인터뷰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아카시의 성균관 적응기

“안녕하세요. 아카시입니다. 오늘 인터뷰는 한국말로 하는 건가요, 영어로 하는 건가요?”

그가 한국말을 못하는 줄 알고 기자가 건넨 영어 인사에 아카시는 놀랍게도 한국말로 답을 해왔다. 아직 서툰 한국말이었지만 억양과 문장 짜임새가 꽤 자연스러웠다. 한국말을 배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그 정도 구사하는 걸 보면 아카시는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한국말을 부단히 연습했던 것 같다. (인터뷰는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 진행했다.)

“저는 인도에서 왔어요. 이제 한국 생활 2년차예요. 한국 유학 프로그램이 있어 작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작년엔 본격적인 전공 공부를 하기에 앞서 한국어를 배우는 데 시간을 보냈어요. 한국어 능력 시험 3급에 통과하고 올해에 이곳 성균관대에 오게 되었죠.”

실험실에 있는 외국인들 중 아카시만 한국말을 할 줄 안다고 했다. “작년에 대전에서 한국어 교육과정을 공부할 땐 주변에 주로 외국인들이 있었는데, 이곳엔 거의 한국인들만 있어서 한국말 연습하기에 좋은 환경이에요. 듣는 건 어느 정도 괜찮은데, 한국어는 단어가 어려워서 말하는 게 영 어려워요. 아무래도 제가 실험실에 같이 있는 다른 외국인 친구들보다 한국말을 잘하다 보니 실험실 동료들이 제게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실험실 생활은 어떤지 궁금했다. “쉽지만은 않아요. 한국말이 어렵기도 하고, 실험실에 일이 많아서 힘들기도 하죠. 평일 뿐 아니라 주말에도 실험실에 나가곤 하거든요. 그리고 인도의 실험실과는 분위기가 달라서 처음엔 놀라기도 했어요. 제가 인도에서 있었던 실험실은 자유로운 분위기였는데 이곳은 그에 비해 보수적인 편이에요. 전통이나 절차가 많은 것 같아요. 적응해나가고 있습니다.”

유전공학자 아카시 아후자

아카시가 유전공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원래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의사가 되기 위한 시험에 응시했다가 통과하지 못했어요. 그러고 한 번 더 도전한 후 유전 공학을 공부하기로 마음을 바꿨죠. 학부 과정에서부터 박사 과정까지 공부하며 느낀 것은 제 전공에 무척 만족스럽다는 거예요. 연구 분야도 다양하고,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새로운 세계가 보이는 것 같아 즐거워요. 연구하는 과정도 흥미롭고요.”

“제 주요한 목표는 일단 박사 과정을 잘 마치는 거예요. 지금 이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데 아주 충실하고 싶어요. 열심히 쏟아 붓고 훌륭하게 박사 학위를 따내고 싶어요. 음, 그 이후엔 인도에 돌아가서 친구들과 사업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인도 청년의 한국 생활 이야기

“제 고향은 아주 작아요. 이곳 캠퍼스 전부 합친 것쯤 될까요? 인도의 남쪽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인데, 정글이 우거진 곳이에요. 사자가 마을로 내려오기도 하고 하루에 한 번 꼴로 집에서 뱀을 보기도 해요. 제 고향은 그런 곳입니다.” 고향과는 영 딴판인 이곳 한국에서의 생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을까 궁금했다.

“전 한국이 좋아요. 사람들이며 음식, 치안. 좋은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한국 음식은 제 입에 정말 잘 맞아요. 삼겹살, 부대찌개, 보쌈 이런 것들도 좋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닭갈비에요.” 그가 꼽는 최고의 밥도둑은 김이다. “한국에 오기 전 김을 처음 먹었을 땐 ‘엥, 도대체 이게 뭐지. 한국 사람들은 이걸 왜 먹는 거지.’ 싶었는데, 계속 먹다 보니 이만한 게 없다 싶어요. 저는 요즈음 매일 김을 먹어요. 밥 없이도 간식처럼 먹습니다. 이제 김 없이 못 살아요. (웃음)”

한국 생활이 좋기도 하지만 인도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 때문에 때때로 힘들기도 하다고 한다. “제게는 11살짜리 여동생이 있어요. 나이 차가 많다 보니 제가 많이 귀여워해요. 그런 동생을 못 본지 벌써 일 년이 넘어서 많이 보고 싶어요.” 아카시, 그는 동생바보다.

고마운 인연들

한국 생활에서 좋은 점을 꼽을 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지내며 한국 사람들로부터 도움 받은 기억이 많아요. 한 번은 지하철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어요. 밤 11시 즈음이라 거의 막차 시간이었죠. 어느 여성분에게 도움을 구했는데, 그분이 기꺼이 시간을 내어 지도로 길을 다 찾아주고 성균관대로 가는 버스까지 찾아서 알려주었어요. 얼마나 고마웠나 몰라요. 제가 조금 한국말을 할 줄 아니까 사람들이 더 호의적으로 도움을 베풀어주는 것 같아요.”

실험실에서 함께 지내는 교수와 동료들에게도 고맙다고 했다. “교수님들이 정말 좋으세요. 친절하시고요. 외국인이라고 해서 차별을 하지 않고 다른 한국 학생들과 똑같이 잘 대해주세요. 그 점이 가장 좋습니다.” 선배와 교수로부터 개인적인 도움을 받은 경험도 있다고 했다. “수술해야 해서 돈이 필요했던 적이 있는데, 외국 생활을 하느라 경제적으로 여유있지 않은 저를 주변에서 도와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성균관대 학생들에게 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망설이지 마세요. 마음을 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도망치지 않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해도 괜찮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 당신을 친절히 맞아주는 이들이 분명 있을 테니까요. 새로운 기회 앞에서 너무 고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언어가 뛰어나지 않다고 해서 주눅 들거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최재영 기자
이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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