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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아래서 | 지식채널 S


글: 우충완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는 제가 생각해도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생물학을 전공했고, 석사 때는 임상심리, 그 후 정신과 수련을 거쳐서 임상심리전문가가 되었고, 박사 때는 인지심리학과 인지과학을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에서 “공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제가 매일 주로 하는 일은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데이터 사이언스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박사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려고 자리를 알아볼 때, 다행히 “융합형” 학과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융합형 인재”라는 개념도 만들어져서 감사하게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학부생, 대학원생이었을 때 이러한 일들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학문 분야를 계속 바꾸면서 저와 제 가족들이 힘들 때도 있었고, 확실한 미래를 포기하기로 마음 먹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박사 과정 중에 겪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제가 어떻게 소위 "융합형 인재”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또한 그 과정이 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과 얼마나 맞닿아 있었는지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생명과학부를 졸업하고 석사때부터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고등학교 때부터 사람에 관심이 많았고 친구들을 상담해주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대학에 와서도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면서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고, 사람들의 행동과 마음 상태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 흥미를 느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고 싶다고 일부러 가장 평범한 육군 현역을 선택해 군대를 다녀오면서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은 "사람들이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결론과 함께 전역한 후, 망설임 없이 임상심리학과 교수님을 컨택하여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깨닫게 된 것은 제가 아무리 사람에게 관심이 있고 대화를 좋아한다고 해도 저는 기본적으로 과학도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심리학 중에서도 실험과 데이터를 강조하는 실험심리, 인지심리, 계량심리 등에 관심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고, 사람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임상”과 실험적, 생물학적 접근을 강조하는 “인지”, “신경과학” 등을 결합한 무엇인가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석사 후 3년의 정신과 수련을 통해 300명 이상의 환자들을 만나서 심리평가와 면담을 하는 귀한 경험을 했고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증도 땄지만, 실험과 신경과학을 통해 정신 현상과 문제들을 연구하고 싶다는 마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에 유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 당시에만 해도 이러한 분야들을 융합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여러 대학원에 지원했는데, 그 중에서 인지신경과학으로 유명한 콜로라도 볼더 대학은 가장 가고 싶은 곳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당차게도 학교측에 임상심리와 인지심리를 동시에 전공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물론 외부장학금 등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게 요구하긴 했지만, 학과에서 전례가 없었던 그런 입학을 영어가 제2외국어인 유학생에게 허락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긴 협상 끝에 학교 측에서 그러한 조건의 입학을 허락받았고, 저는 자신감 넘치게 박사과정을 시작했지만 곧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기능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서 인간의 인지와 감정을 탐구하는 상당히 유명한 연구실에서 열심히 배우며 일했고,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임상심리 전공에서 2학년 때부터 내담자를 직접 만나 심리치료를 하는 과목을 이수해야 했고, 문화 차이와 영어 의사소통 능력의 부족 등으로 내담자와의 심리치료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콧대 높았던 임상심리의 몇몇 교수들과 스태프들이 제가 인지심리를 동시에 전공하면서 임상 활동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시간과 노력을 더 들여가면서 임상 수련에 최선을 다했지만 이미 불만을 가진 교수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박사 2년차를 마쳐갈 즈음에는 “앞으로 1년간 연구활동을 그만두고 임상 수련에만 집중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연구를 그만하지 않으면 임상심리를 그만 두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죠. 쉽게 말하면, 연구냐 임상이냐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이 양자택일의 상황은 실로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하고 있었습니다. 임상심리 학위를 그만둔다는 건, 심리학 안에서이긴 하지만, 전공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었고, 이제까지 꿈꿔왔던 임상심리학 교수가 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 했습니다. 인지심리 분야에서도 임상심리의 이력을 가진 저를 받아줄 지는 미지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미래를 생각하면 임상심리 학위를 포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뇌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것은 제가 너무나 원했던 것이었고, 유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저는 결혼 한 지 5년 정도 지났고 아이가 둘이나 있었습니다. 돈 없고 시간 없는 유학생활로 가족을 힘들게 하는 가장으로서 제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연구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한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그 분도 비슷한 기로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봐서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단기적으로는 불안해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좋은 기회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조언을 했습니다.

제 아내도 제게 “남은 인생을 뭘 하며 살 때 가장 행복하겠냐”고 물어보면서 꼭 교수가 되지 않더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감동의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지금도 이 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이 말을 제 지도교수인 Tor Wager 교수님께 전하면서 함께 눈시울을 적셨던 기억도 나네요.

저는 연구를 택했고, 임상심리 학위를 포기했습니다. 이 선택이 제 행복만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 되지 않기 위해서, 또 이렇게 저를 지지해준 아내와 가족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일했고 많은 수의 논문들을 출판했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한국에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게 최대한 빨리 한국에 돌아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와 뇌과학이미징연구단에서 학문적으로 완전히 여물지 않은 저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주셨고, 제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긍정적으로 봐주셔서 좋은 자리를 잡게 되었고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학과는 진정 융합적인 학과입니다. 매우 다양한 학문 분야의 교수님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융합 보다 중요한 건, 모두가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 하는 연구들을 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제 경우에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 평생 해도 행복할 것을 찾다보니 이렇게 다학제적이고 융합적인 배경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가족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여러분도 대학생활 동안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어떤 걸 하면 내가 정말 행복할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시고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융합형 인재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진정한 나를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융합형 인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게 이 글을 통해 제가 드리고 싶은 한가지 메시지입니다.

혹시 저희 연구실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http://cocoanlab.github.io를 방문해 주세요. 보시면 알겠지만 의학, 심리학, 생물학, 전기전자, 컴퓨터과학 등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융합형 인재들이 모여서 뇌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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