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은행나무 아래서 | 지식채널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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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글로벌리더 학부 조교수 김상태

1999년 2월에 졸업 했으니까, 18년만인 2017년 3월에 명륜 캠퍼스로 다시 돌아왔다. 물론 그 사이 몇 번 학교에 오긴 했지만, 볼 일만 보고 금방 떠났으므로 18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다시 이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이제는 연구실도 있고 등록금을 내는 대신 월급을 받는 신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집 떠나 타향살이하는 사정이나, 인생의 한 시기를 넘겨 새로운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절박함은 같은 것 같다.

처음 한동안 옛날 살았던 공간들을 찾아 다녔다. 대학교 1, 2학년 때는 '탈'반이라는 동아리가 가장 중요했다. 졸업 얼마 후부터 신입실원들이 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언젠가 문을 닫았다. 아직 '얼'반은 남아있는데, '얼'반과 비슷하게 풍물과 탈춤, 마당극을 하는 동아리였다. 동아리 방이 '아지트'였다. 그 방은 수선관 1층에 있었는데, 다시 찾았을 때는 미술학과의 실습실로 바뀌어 있었다. 그 때는 법학관이 없었으니까 대운동장 (그럼 소운동장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디에 있지?) 끝까지 걸어가면 계단과 함께 별도의 통로가 있었다. 맨날 꽹과리를 쳐대니 학교 가장 외딴 곳, 햇볕도 안들어오고 늘 곰팡이 피는 그곳에 동아리방이 주어졌는가 보다.

대부분 수업은 사회과학대 (참고로 나는 행정학과를 다녔다.)와 유학대에서 들었는데, 각각 지금의 국제관과 600주년 기념관 자리에 있었다. 동아리 연합회는 금잔디 광장과 대운동장 사이에서 허물어 질 것 같이 서서 학교를 둘로 나누고 있었다. 대학본부는 지금의 학생회관에 있었는데, 1학년 때 총장실 점검한 후에 자리 잡고 며칠 산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총장님께 엄청 미안하다.) 술 먹기 위해 찾은 정문 근처 청룡상 있는 자리, 그리고 동아리 동기들이 생일 파티를 해준 옥류정. (호암관, 수선관은 간 기억이 나지 않는다.) 3학년 때는 양현관에서 살면서 공부했으니까 양현관의 열람실과 도서관 3~4층이 주요 터전이었다. 학교 쪽문의 명륜동 동네는 전형적인 언덕배기 서민들이 사는 동네 풍경이었다.

지난 주 행정학과 94학번 동기들 모임이 있었다. 동기가 이런 얘기를 했다. '복학한 3학년 땐가 학교에 다니는 학과 동기들을 모두 꼽아봤는데,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동기 수가 31명 밖에 없었어'. 참고로 입학 정원이 50명이었다. 아마 그 때가 학교가 가장 어려웠을 때 였던 것 같다. 입학하고 얼마 다니지 않아 많은 동기들이 학교 시설과 분위기에 실망하고 재수, 삼수의 길로 갔다는 거다. 사회과학대나 유학대는 전혀 방음이 되지 않아서, 밖에서 집회하는 날에는 늘 휴강이었다. (사실 나의 책임이 크다. 집회라도 있으면 문선대라고 북, 꽹과리로 온 학교를 시끄럽게 했으니까.) 나야 워낙 촌놈이라 서울이라곤 처음이라 대학교가 어떤 곳인지 잘 몰랐지만 동기나 선후배 모두 학교가 낡고 형편없다고 했다. 집회를 하기 위해 서울의 다른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명륜 캠퍼스가 얼마나 열악한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학교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북동 약수터길이다. 양현관에서 행정고시를 준비할 때, 선배가 알려준 길인데 한양 도성을 따라 걷다가 성북동으로 넘어가서 돌아오면 왕복 30분 정도 걸린다. (길은 그대로인데, 약수터는 없어졌다.) 봄이면 산벚나무 꽃이 가득하고 여름에는 녹음이 무성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대운동장의 담을 넘어간 적이 있었다. 왜냐고 물으면 봄날이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 난다. 담 너머 그곳은 신천지였다. 아름드리 참나무가 빽빽한 원시림이었다. 나중에야 그곳이 창덕궁 후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4학년 졸업 얼마 전 쯤에는 우연히 삼청공원을 발견했다. 학교 생활은 고달팠지만, 밖에서 늘 명륜이 그리웠다.

다시 학교로 돌아 왔을 때 옛날 그 장소와 함께 새로운 공간을 찾고 상상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우리는 매일 등산을 해야 학교를 오갈 수 있고,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90년대와 비교할 때, 학교 시설과 풍광,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이 좋아졌고, 세상과도 더욱 가깝게 연결되어 있었다.

학교 오가는 길에 600년보다 더 오랜 성균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다. 학생 때는 왜 그렇게 몰랐을까? 명륜당과 문묘 앞의 은행나무가 싹을 틔우고 단풍이 물들어가는 모습을 왜 유심히 바라보지 못했을까? 유림회관 뒤편으로 해서 성균관을 가로질러 학교로 오지 않았을까? 날씨 좋은 날에 동재의 툇마루에 앉아 차 한잔이라도 마실 생각을 못했을까? 요즘은 성균관 앞을 서성이기도 하고, 날이 궂으면, 국제관 5층의 바깥 베란다나 아니면 리셉션 할 수 있는 강의실 (물론 비어 있어야 한다) 남쪽 끝에서 성균관을 한눈에 내다보는 맛을 즐기기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정원이라는 창덕궁 후원의 사계(四季)를 누리는 호강은 어떨까? 교수회관 3층 연구실에서 보면 후원과 남산이 펼쳐진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웠는데 가끔 눈이라도 내릴 때면 후원의 참나무와 눈이 빚어내는 풍광에 빠져든다. 법학관 옥상은 인왕산부터 북한산까지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지점이다. 후원도 한눈에 건너다 보인다. 후문쪽에서 내려오다가 수선관 쯤에서 마주치는 후원과 남산 풍경도 늘 새롭다. 수선관 9층 어느 강의실에서 내려다 보는 '스카이 뷰'도 어떻게 기억될까? 오후 1시쯤 한가해진 대학본부 6층의 패컬티 식당의 창가에서 바라보는 후원과 학교 전망이 어우러지는 풍광도 좋다.

북악산과 삼청공원도 꼭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시 학교에 돌아왔을 때 가장 흥분되었던 것이 학교 뒷편으로 북악산을 마음껏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90년대에는 북악산 인근은 군사시설로 일반인의 접근이 엄격히 통제되어 있었다. 학교 후문이나 퇴계 인문관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와룡공원에 이르고, 성북동 쪽으로 한양도성을 넘어가면 말바위와 숙정문을 지나 북악산 정상에 이를 수 있다. 북악산에서 서울의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북악 스카이웨이의 팔각정으로 오를 수도 있다. 조금 편안한 길을 걷고 싶다면 옥류정에서 계단을 올라 한 150미터 쯤 내려가다가 오른쪽으로 난 쪽문의 계단으로 삼청공원에 갈 수 있다. 삼청공원은 일년 내내 아름답다. 데이트 코스로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을 듯 하다. 공원 숲 속 곳곳에 호젓한 공간이 있고, 가장 분위기 좋은 도서관 카페가 있으니까 말이다. 한양도성길 따라 성북동도 가 보자. 참 예쁜 카페며 오래된 가게가 자리잡고 있다.

학교 바로 바깥도 역사와 문화, 정치로 수군수군 하고 있다. 지난 광화문 촛불 집회도 태극기 집회도 그 함성이 학교에 전해지는 거리다. 학교 다닐 때는 대학로와 종로가 전부인 줄 알았다. 수선관 위쪽 옥류정 주차장이 종점인 2번 버스는 놀라웠다. 삼청공원, 북촌, 인사동과 낙원동, 종로와 광화문 근처까지 모든 곳으로 데려갔다. 2번을 타고 정독도서관을 찾아가기도 했고 창덕궁과 경운궁을 걷기도 했다. 인사동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가장 맛있는 떡집을 발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광장시장을 가고 종묘에 닿을 수도 있다. 아니면 법학관과 후원 담 사이의 오솔길을 따라 고려사이버대학으로 이어지는 길로 서촌, 북촌을 찾기도 했고, 국립현대미술관까지 걷기도 했다. 서촌은 청와대 앞길을 걸어가는 것이 제맛인데 문재인 대통령이 24시간 개방했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가 담장을 헐고 시민도서관을 짓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 학교 뒷마당에 멋진 도서관 하나 더 생기는 격이라고 생각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성균관을 가로막고 있는 동쪽의 오래된 고시원을 철거하고 공터로 만들고 싶다. 성균관이 그냥 지나치게 되는 이유도 도로변에서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에서 고시원을 매입해서 헐고 그 공간을 비워 둔다면 비로소 성균관이 세상에 빛을 발할 것 같다. 정문에서 올라오면서 성균관 바로 앞 도로와 맞닿은 공간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걸 보면 안타깝다. 이 공간을 품위있는 정원으로 만들면 어떨까? 학교 뒷산 응봉의 계곡물이 학교를 따라 흐르면서 개울이 되기도 하고 폭포가 되기도 하고, 도서관 앞 쯤에서는 분수로 솟구치기도 한다면! 물소리도 좋겠지만 학업에 지친 학우들이 힘을 얻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법학관과 후원 담장 사이에 버려진 공간에 멋진 조망쉼터가 생긴다면 어두워져 오는 밤을 맞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가 될 것 같다. 후원 원림을 앞에 두고 커피를 한잔 하기도 좋을 것 같고.

성대 명륜 캠퍼스는 좁다. 인터내셔널 하우스 위쪽 땅을 몽땅 사들여 학생들이 생활할 수 있는 기숙사와 실내 체육관을 만들어 버리면 좋겠지만, 그건 좀 먼 훗날의 바램이고 이곳에서 명륜 캠퍼스를 '발견'해보자. 우리가 조금 시야를 넓히면 가장 '핫'한 장소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를 우리가 누리고 있을 수도 있다.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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