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의학상식 | 지식채널 S

삼성서울병원 건강의학센터 양광모 교수
비뇨기과전문의, 前청년의사신문 편집국장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웰다잉(Well-dying)법

10여 년 전 세브란스병원의 김 할머니 사건을 기억하는지. 당시 김 할머니는 폐부종 및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의식불명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가족들은 인위적인 영양공급과 호흡을 멈춰달라고 의료진에게 요구했으나, 의료진이 난색을 표하자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던 사건이다.

오랜 공방 끝에 대법원은 '질병의 호전을 포기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 규정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인간으로써 존엄하게 죽을 권리, 소위 말해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이와 더불어 19대 국회에서 입법 절차를 거쳐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 됐었다. 이 법이 언론에서 말하는 '웰다잉법',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그렇게 통과된 연명의료결정법이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8년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많은 의료인들과 국민들의 기대를 받았던 법이지만 첫 시작부터 삐꺼덕 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우선 당사자가 연명의료에 대해 거절하는 경우가 아닌, 의사를 추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문제다. 우리 현실에서는 환자 본인이 질환명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암과 같은 중증질환의 경우에는 자식만 질병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법적으로 당사자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고 설명하더라도, 자식이 '우리 부모님이 아시면 너무 큰 충격을 받으신다'며 담당 주치의를 말린다. 그렇게 하루 이틀 미루다보면 본인이 연명의료에 대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채 중환자실로 실려 가기 일쑤다.

이런 현실이기에 본인이 연명의료중단을 결정하는 '사전의향서'를 작성하는 비율이 1%도 되지 않는다. 차선책으로 보호자들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기는 했으나, 이것도 쉽지 않다. 법에 따르면 가족 2인이 일관된 진술을 하는 경우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시행하는 비율이 25% 밖에 되지 않는다. 오히려 차차선책으로 만들어 놓은 가족 전원 합의는 40%에 달했다. 환자가 임종기에 들어갔을 때 가까운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의사결정을 쉽게 할 수 없다는 우리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시행한지 4개월간의 통계이기에 장기적 결과는 좀 더 두고 봐야한다.

게다가 행정적인 문제도 여전히 존재한다. 임종기 환자가 사전의향서를 정부당국에 신고를 한다고 했더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허점이 존재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연명의료정보 시스템에 등록을 한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타병원 응급실로 이송될 경우, 의료진이 환자가 사전의향서를 등록했는지 컴퓨터 시스템을 조회하고 앉아 있는 노릇이다. 그런 컴퓨터 시스템보다는 목걸이나, 문신으로 연명의료중단을 표시하는 것이 더 낫다는 사례발표도 있을 정도다.

여러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속담에 '첫 술에 배부르랴'란 말이 있듯, 연명의료결정법 역시 처음 시행에 따르는 착오일 가능성이 더 많다. 행정적인 부분이야 수정해 나가면 앞으로 좀 더 개선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보다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의료집착적'인 임종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중환자실에서 이뤄지는 인공호흡기와 영양제 공급 등의 현실은 실제로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미국에서 있었던 연구에 의하면, 중환자실에서 처해지는 인공호흡기와 영양공급 등에 대한 실상을 알고 나서는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표한 경우가 더 늘었다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다.

이런 인식변화가 선행되고 나서야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 웰다잉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수경 기자

기사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