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은행나무 아래서 | 지식채널 S


글 : 유우종 전자전기공학부 교수

어렸을 적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만화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드래곤볼! 지금은 아이들이 매주 웹툰에 새로운 회가 업데이트를 기다리는 게 일반적이나,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다양한 만화들의 새로운 회를 묶은 챔프, 아이큐 점프 등의 만화책이 나왔었다. 매달 드래곤볼의 새로운 회가 나오길 갈망하며 목이 빠지게 기다리곤 했었고, 만화책 출간일 날 동네 문구점에서 점프 만화책을 사들고 읽은 드래곤볼은 어찌나 분량이 짧던지, 흥분된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또 다시 기나긴 한달을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드래곤볼의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게로 박사가 만든 막강한 인조인간 및 셀과 혈투를 벌이는 손오공과 베지터의 모습이다. 대부분의 인조인간들은 인간의 뇌를 기계에 연결하는 형태로 만든 반면 인조인간 16호는 오로지 기계로만 만들었다. 인간과 인조인간을 흡수하여 힘을 기르던 셀이 기계인간인 16호만은 흡수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과연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조인간 16호의 제작이 가능할까? 실제로 우리 연구실을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이 인간의 인지능력(학습, 인식, 판단 등)을 구현하는 뉴로모픽 시스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현재의 컴퓨터는 계산 위주로 발달되어 수학 계산에 있어서는 인간의 뇌를 월등히 앞서지만, 인지 능력 면에서는 인간의 뇌가 최신 슈퍼 컴퓨터기반 인공지능보다 수천 배나 적은 전력을 소비하면서 훨씬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 예를 들어 알파고 (AlphaGo, Google DeepMind)와 이세돌 9단 간의 역사적인 바둑경기에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인 알파고는 대용량 슈퍼컴퓨터 수백대를 이용해 시간당 56,000W의 막대한 전기 에너지를 사용한 반면 이세돌 9단의 뇌는 주먹 두 개 정도의 크기에 시간당 20W만을 사용하며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다.

만약 인간의 뇌와 같이 동작하는 인공뇌 컴퓨터를 만든다면 스마트폰에서도 작동하는 알파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뉴로모픽 시스템”이라는 인공뇌를 제작하는 연구가 최근 시작되고 있으며, IBM은 뇌를 모방하여 1백만 개의 뉴런(뇌세포)과 256억 개의 SRAM 기반 시냅스(뇌의 기억저장 기관)를 이용한 시각인지 시스템 트루노스(TrueNorth)를 2014년 발표했다. 트루노스 인공뇌는 슈퍼 컴퓨터 기반 소프트웨어로 제작된 인공지능에 비해 176,000 배 낮은 전력으로 사물을 인지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트로노스의 SRAM 기반 시냅스는 하나의 바이오 시냅스를 구현하기 위해 대용량(42개)의 트랜지스터를 필요로 하며, 결과적으로 쥐의 지능을 구현하기 위해 대용량 냉장고 크기의 트루노스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날로그 메모리 소자인 멤리스터 (memristor)를 이용한 시냅스 모방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멤리스터는 저항값의 변화로 기억을 저장하는 새로운 소자로, 하나의 바이오 시냅스를 하나의 멤리스터로 구현 할 수 있어 회로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대표적인 멤리스터로는 절연막의 저항값 변화를 이용한 저항형 멤리스터 (RRAM)와 반도체의 결정질-비정질 상변화를 이용한 상변화 멤리스터 (PRAM)이 있다. 이러한 멤리스터로 시냅스의 기억저장 기작을 모방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실제로 대부분의 기작을 모방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PRAM과 RRAM을 대량으로 만들었을 때 소자 간 특성이 불균일한 문제를 보여 실제 상용화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플로팅 게이트의 충방전으로 기억을 저장하는 플래시 메모리는 10 년 이상의 데이터 저장 및 1,000,000 회 이상의 충방전 횟수 등 우수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소자간 균일도가 100 %로, 현대의 스마트 폰 및 컴퓨터의 주요 저장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 연구실은 이러한 플래시 메모리를 시냅스 모방 소자에 적용한 "터널링 멤리스터"또는 "TRAM (터널링 랜덤 액세스 메모리)"을 최근 제작했다. 그간 시냅스 모방에 문제가 되었던 플래시 메모리의 구조(3전극)를 시냅스와 동일(2전극)하게 변경하여 동작이 가능하도록 했다.

TRAM은 기존의 RRAM 및 PRAM보다 높은 신뢰성과 1000 배 높은 기억 정밀도를 보였다. 실제로 실험실 수준에서 100개의 소자를 제작하여 90% 이상의 소자에서 균일한 특성이 나타남을 확인했고, 이는 양산형 집적소자 개발 시 100%에 가까운 균일도를 가질 것이라 예상된다.

인류를 위협하기 위해 만든 인조인간들과 이를 만든 게로 박사는 나쁜 놈이었고 물리쳐야할 상대였는데, 25년이 지난 지금 내 모습이 게로 박사가 되어있고 내가 하는 연구가 인조인간의 인공뇌를 만드는 일일 줄은 그때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조인간 16호가 셀과 맞서 싸워 지구를 지켰듯, 착한 인공뇌를 개발하면 의료 진단 및 치료, 자율주행 자동차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유용하게 사용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나와 우리 대학원생들은 오늘도 열심히 게로박사가 되어 인조인간 16호의 인공뇌 개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김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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