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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9월 22일부터 12월 29일까지 600주년 기념관 지하 1층 박물관에서 ‘찬란한 꽃의 세계, 화왕계’ 기획전이 개최된다. 이번 기획전은 설총의 화왕계를 변주하여 모란, 연꽃, 매화, 장미에 담긴 각기 다른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작품들을 전시한다. 이번 커버스토리에서는 화왕계 기획전을 다녀오고, 작품들을 보기 전 알아두면 쓸모 있는 배경 지식을 준비했다.

통상적으로 화왕(花王)이라면 모란(牧丹)만 떠올리기 쉽다. 모란은 전통시대 화왕으로 오랜 기간 군림해왔지만 우리 역사의 국면마다 고려시대의 연꽃, 조선시대의 매화 등 화왕의 위치에 버금가는 꽃들이 각 시대의 미감과 사상에 따라 존재해왔다. 현대에는 설총의 「화왕계」에서 아름다움 때문에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장미가 ‘모두의 꽃’으로 가장 사랑받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각 화왕이 지닌 품성에 주목해 모란은 ‘겸손함을 갖춘 왕의 꽃’, 연꽃은 ‘부활과 정화, 구원의 꽃’, 매화는 ‘혹한을 견디고 찾아오는 봄의 꽃’, 장미는 ‘모두의 꽃’이라는 소주제로 나누어 전시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우리 시대를 관통해 온 꽃의 시대사이자 문화사를 이해할 수 있다.

기획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모란에 대한 작품이 우리를 반긴다. 모란은 화려함 덕분에 명실상부 꽃의 왕, 화왕이라 할 수 있다. 기획전의 뼈대인 설총의 화왕계에서도 모란은 ‘화왕’으로 그려진다. 왕의 덕목을 갖춘 모란은 화왕계에서 아름다움을 내세운 장미를 경계하라는 할미꽃의 말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갖추기도 했다.

전시는 모란에 대한 화병, 그림 등 다양한 작품을 보여준다. 이들 중 특히 눈여겨 봐야 할 작품은 활옷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화려한 위의 사진과 같은 활옷을 입고 연지곤지를 찍은 공주나 옹주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활옷은 조선시대의 혼례복이며, 화려한 옷이다. 혼례 때 입는 특별한 옷답게 모란, 연꽃, 물결, 봉황 등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자수들이 인상적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이러한 왕실의 활옷을 재현했다. 재현된 왕실 활옷은 복온공주(福溫公主, 1818~1832)가 1830년 13세 때 가례에서 착용했던 것이다.

모란에 이어 연꽃에 대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연꽃은 ‘부활’, ‘정화’, ‘구원’의 속성을 지닌다. 불교에서는 연꽃을 귀하게 여겼는데 진흙 속에서 갖고 있는 깨끗함 때문이다. 불교에서 연꽃은 극락으로 환생 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자연히 부활의 속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 주변을 정화시키는 연꽃은 ‘정화’의 속성을 갖는다. 성리학에서는 이러한 연꽃의 ‘정화’ 속성이 군자와 닮았다며 높이 사기도 했다. 조선 사대부의 사랑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채련’ (연밥을 골라 따는 일)은 연인을 골라 정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사랑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뜻이 있다. 연꽃이 ‘구원’의 상징인 이유다.

연꽃의 다양한 속성을 보여주는 작품들 중 눈여겨볼 만한 작품은 고려시대 수월 관음도이다. 전시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에서는 연꽃 위에 앉아 정병을 들고 중생을 구원하는 관음보살의 세상을 볼 수 있다. 특히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속 버드나무 꽂힌 청자정병(靑瓷淨甁)은 프리저브드 플라워(Preserved Flower)의 형태로 ‘한국문화예술 명인 제16-21-02-07호 화예분과(프리저브드 디자인)’ 김은경 명인에게 의뢰해 재현했다. 프리저브드 플라워는 최대 3년동안 생화 상태가 지속되는 꽃이다.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명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꽃을 해석하는 다양한 명인들의 솜씨를 구경할 수 있다. 사진을 봐도 알수 있듯이 정병에 꽂힌 버드나무 잎사귀가 진짜 같다.
* 프리저브드 : 생화를 특수 보존 처리하여 1∼5년간 모습이 유지되는 가공화.

모란이 고전적인 ‘화왕’이라면 매화는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시기까지의 ‘화왕’이라 할만하다. 매화가 가진 꿋꿋함과 시련을 이겨내는 속성 때문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은 자연은 음양의 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최초의 기가 ‘태극’에서 발현한다고 보았다. 매화는 예로부터 최초의 기, 태극을 표상했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자연적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러한 매화의 강인함은 일제 강점기에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했다. 추위를 극복하고 따뜻한 봄날을 예고하는 매화는 저항 정신을 갖고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에게 위로이자, 희망이었다.

매화에 관한 작품 중에서는 윤회매가 인상적이다. 윤회매는 인조 매화로, 밀랍으로 만들었다. 벌이 꽃가루를 채집해 꿀을 만들고 다시 그 꿀을 활용하여 꽃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윤회’와 닮았다 하여 윤회매라 부른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가 매화를 기다리며 만드는 윤회매는 곧 우리 조상들이 매화를 즐기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 에서는 이덕무의 ‘윤회매십전’를 참고하여 국가무형문화재 124호 황수로 장인이 만들었다. *윤회매 : 매화진(밀납)으로 매화꽃을 만들어 오래 볼수 있게 만든 것.


설총의 화왕계에서 장미는 아름다움을 무기로 임금에게 아첨하는 간신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과거에 장미는 배척과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 탓에 조선시대 장미에 대한 작품들은 수가 적다. 하지만 근대 이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새롭게 장미가 전해졌고,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은 ‘모두의 꽃’이 됐다.

주목할 만한 작품은 구지연 작가의 들장미다. 들장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장미와 모습이 다르다. 보통의 장미가 사람 손을 타고, 다양한 종과 교배하면서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기 때문이다. 작가는 장미를 사고 몇 년 동안 장미를 두다가 시든 장미들 속에 핀 들장미를 발견한다. 사람의 손을 타서 아름답게 교배 된 장미도 결국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신비함을 느꼈다고 한다.

현대의 화왕인 장미는 근대 이후 서양에서 왔고, 새롭게 형성된 서양화단에서 꽃정물화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70년대 동양화단에서 동양 전통의 수묵채색 기법으로 장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선구자는 동양화단의 ‘장미의 화가’로 불렸던 故 월전 장우성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동양화의 미감으로 재해석된 20세기 하이브리드 장미로 장우성의 장미(1977년作), 꽃다발(1980년作), 두 작품을 이천시립 월전 미술관에서 대여해 전시했다.

그 밖에 볼거리로 박물관은 그동안 수집한 청자와 분청자, 그리고 백자 유물 중에서 꽃이 시문된 대표작 10여점을 공개했다. 박물관은 수집한 대표작을 동영상으로 제작했다. 제작사는 연적 위 개구리가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깨어나 연꽃밭을 뛰어놀며 도자 속 연꽃문양이 연꽃으로 변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 미디어작품은 고려시대 청자 개구리장식 연잎모양 연적(靑瓷蛙裝飾蓮葉形硯滴), 청자음각연화문주자(靑瓷陰刻蓮花紋注子), 청자양각연판문접시(靑瓷陽刻蓮瓣紋接匙)를 활용해 만들고 ‘도자에 핀 꽃’이라 이름 지었다. 영상이 위트있어 보고 있으면 작은 청개구리가 마치 살아있는듯 느껴진다. 실제로 영상을 보면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운 청개구리를 만날 수 있다.

지금까지 화왕계 전시의 이모저모에 대해 알아보았다. 아름다운 꽃이 사회적인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 인상적인 전시였다. 중간고사가 끝났으니 600주년기념관에서 전시를 감상하는 여유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박지윤 기자
김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