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학교 웹진

독자투고

글 : 장지영 프랑스어문학과 (13)

1편. 순례길을 걸으며 깨달은 것들

오스트리아에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 생활이 끝나고 내게 약 한달 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 시간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 하다 문득 순례길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유럽여행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그렇게 순례길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다들 내게 왜 순례길을 걷기로 결심했는지 많이 물어본다. 내게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사실 나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나는 종교도 없고, 어떠한 목적이나 목표를 이루고자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저 걷고 싶었다. 이유는 그게 다였다. 순례길을 걷기로 결심 하고나서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순례길이 단 한 가지 길만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짧게 이야기하자면 순례길도 어느 나라에서 출발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길들이 있다. 대부분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출발해 800km에 육박하는 프랑스 길을 선택하지만 나는 포르투갈 길을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 길만이 유일하게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 동안 내가 완주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침낭을 사고 등산화를 사고 짐을 가볍게 챙긴 뒤 포르투갈 리스본행 비행기를 탔다. 거창한 다짐이나 목표는 없었다. 그저 궁금했다. 순례길이 어떤 길인지, 이 길은 내게 어떤 경험을 선사해줄 것인지. 리스본에서 이틀 동안 짧은 관광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길을 걷기 위해 포르투갈 포르투로 향했다. 나는 9일 동안 포르투 대성당에서 출발해 스페인 산티아고를 향해 약 240km정도를 걸었다.

포르투갈 길은 다른 순례길에 비하면 비교적 짧은 거리이고 그렇게 힘든 코스도 아니다. 이 글은 '내가 이만큼의 길을 걸었어요.'라고 자랑하는 글이 아니다. 나는 그저 이 길에서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쓴다.

약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하루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고자 한다. 매일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을 따라 일정한 거리를 걸으면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숙소가 나온다. 그런 숙소를 알베르게(=Albergue)라고 부르는데 스페인 말로 '숙박소' 혹은 '숙박지'라는 뜻이다. 순례길 코스를 따라 매일 다른 도시나 마을의 알베르게에 도착하는 것을 기준으로, 매일 평균 적게는 22km 많게는 35km이상(하루에 50km를 걷는 사람도 있다)을 걸어간다.

포르투갈 여름 날씨는 비교적 매우 더운 편이라 새벽 혹은 아침 일찍 출발해 매일 약 5~7시간 정도 걸으면 하루 코스가 끝난다. 하지만 사람마다 걷는 속도와 향하는 목적지가 달라 개인차는 있다. 순례길 코스에는 노란색 화살표가 그려져 있으며, 이 화살표를 따라 걸어가면 스페인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매일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 아래 배낭하나 메고서 일정한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매일 그냥 걷는 건데 무슨 의미가 있어?"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이 길을 통해 사람을 얻었고, 그들로부터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배웠다.

순례길을 걷다보면 정말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각자의 사연도 참 다양하다. 폴란드에서 오신 70대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온 11살 손자와 손녀. 사랑하는 남편의 손을 잡고 6번째 순례길에 오른 남아프리카에서 오신 60대 할머니. 반평생을 길 위에서 보낸 이탈리아 아저씨. 3개월째 세계일주 중인 친구까지. 사람들은 젊을 때 여행을 많이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흔히 하는 관광으로서의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여행이란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내가 가진 시야를 넓혀 나가는 것, 사람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포용력을 넓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오랜만에 진정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하루는 예정했던 계획보다 덜 걷기로 결심한 하루였다. 오전 11시였음에도 햇볕은 세상의 모든 만물을 태울 기세로 이글거렸다. '그래 오늘 하루만 목표치보다 덜 걸어보자. 천천히 가는 거야.' 라는 마음으로.

가는 길 도중에 알베르게에 들렀다. 알베르게에도 종류가 있다. 기부제로 운영되는 공립 알베르게(공립이지만 돈을 내는 경우도 있다)와 돈을 주고 지내야하는 사설 알베르게가 있다. 이 날 내가 지낸 곳은 페르난다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였다. 순례길을 걷기 전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검색하면서 페르난다 아주머니에 대한 글을 여러 번 읽었다. 이 길을 다녀간 한국인 순례자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는 단 하나. "무조건 페르난다 아주머니 집에서 하룻밤 지내고 가야할 것."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아주머니 집으로 들어섰다. 굽이진 작은 마당길을 따라 들어가니 작은 집이 하나 나왔다. 누가보아도 그냥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마침 페르난다 아주머니는 외출 중이셨고 나는 그곳에서 지내고 있는 캐나다에서 온 지니와 독일에서 온 알레자를 만났다. 둘은 순례길을 걸으면서 만난 사이였고, 이틀 전부터 발에 생긴 심한 물집 때문에 이동을 못하고 있었다.

이수경 기자

기사전체보기